발달장애인의 적절한 정신과 약물치료에 대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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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기회가 되어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아우르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정신과 약 사용 실태를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살필 수 있었다. ‘절반’이라는 말로 결과를 요약 설명할 수 있었다. 정신과 약물의 평균 처방률은 지적장애인의 경우 전체의 45.9%,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전체의 49.6%에 달했다. 이러한 결과는 영국과 미국에서 2010년대 이후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도 상당히 근접한 수치다. 2009년부터 2017년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물 처방률은 점점 더 높아졌다.
어떠한 경우에 발달장애 당사자의 약물치료를 고려하게 될까? 지적장애는 지적 기능과 적응행동의 제한이 만 18세 이하에 나타나는 경우로 정의하며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장애, 반복적이고 상동적 양상의 행동으로 정의한다. 아직까지는 발달장애의 핵심 특성 그 자체는 정신과 약물 치료를 통해 낫게 할 수 없다. 발달장애에서 정신과 약물치료를 고려하는 경우는 자극과민성, 자·타해 위험성, 수면의 어려움, 심한 상동행동, 동반 정신질환이 명백한 경우 등이다.
하지만 정신과 약물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결코 당사자의 모든 어려운 행동을 ‘없앨 수는’ 없다. 이는 비발달장애 정신질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불안장애를 생각해볼 때 우울감을 ‘없애는 것’,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 치료 목표가 되지 않는다. 우울과 불안에 잘 버티고 환자 스스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좀 더 실효성 있는 치료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발달장애 당사자 행동의 ABC를 살피고 행동(Behavior, B)을 중심에 두고 선행상황(Antecedents, A)과 결과(Consequences, C)를 적절하게 잘 조절해주고 도움이 어쩌면 맞는 약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약은 ABC에 대한 접근을 좀 더 부드럽게 돕는 것이다.
발달장애가 있으면 소통이, 특히 언어적 소통이 어렵다는 생각에 언어적 진료에 익숙해진 정신과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발달장애 당사자와 소통을 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장혜영 작가의 『어른이 되면』과 같은 책을 통해 장애 당사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이 그 곁에 있는 가족을 비롯한 돌봄제공자와 소통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어야 함을 배웠다. 처음부터 쉽진 않았지만 하다보니 이제는 몸에 배었다. 발달장애인들도 말의 뉘앙스를 알 수 있다. 착석, 눈맞춤, 상동언어, 상동행동, 반향어, 부탁과 수행 같은 여러 행동 양상들을 그들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살필 수 있고 가족 및 돌봄제공자에게 ABC 관점을 바탕에 둔 조언들을 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들의 자극과민성, 자·타해 위험성, 수면의 어려움 등 어려운 행동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신과 약물 접근은 2세대 항정신병 약물이다. 자극과민성과 자·타해 위험성 등에는 아리피프라졸, 리스페리돈이 효과적이다. 용량은 최소 제형의 반 알~한 알(아리피프라졸은 0.5~1mg, 리스페리돈은 0.25~0.5mg)로 시작하여 효과와 부작용을 살피고 도움이 된다면 용량을 유지하거나 시작 용량 정도로 서서히 높여가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수면의 어려움, 진정 효과가 필요한 경우에는 쿼티아핀 6.25~12.5mg를 고려할 수 있다(증량 전략은 앞선 두 약물과 비슷하다). 약의 부작용은 다양하고 약물 간 상호작용도 있을 수 있기에 가급적 다약제는 피하도록 하고 필요한 약 2~3종류 안에서 조정하는 게 좋겠다. 메틸페니데이트 같은 전형적인 ADHD약이나 항우울제는 예민성을 높일 수 있기에 조심히 사용해야 한다. 항불안제, 수면유도제 같은 약은 의존성이 있고 어려운 행동을 역설적으로 증가시킬 탈억제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에 가급적 쓰지 않으시길 추천한다. 정신과 약은 진단에 따라 약을 쓰기보다 조절하고자 하는 증상에 따른 기능적 사용을 함을 참고하시면 좋겠다. 항정신병약물이 꼭 조현병이 있어야 쓰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약은 효과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에 예상되는 효과와 부작용을 동시에 고려하여 위험-이득의 저울을 재어 환자, 가족, 돌봄제공자와 함께 약을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임상적 이득이 위험성보다 높은 약제를 골라야 한다. 부작용은 몸과 마음 혹은 행동과 정신 모두에서 나타날 수 있다. 흔히 사용되는 항정신병약물의 신체 부작용은 체중증가,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부작용, 점막 건조의 부작용, 근육 계통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심리 부작용으로는 앞서 언급한 항우울제, ADHD약 투여 이후 증가되는 예민성 혹은 조증 증상 그리고 항불안제, 수면유도제 사용후 나타나는 탈억제 부작용 등이 있다. 부작용에 대처하는 방법은 1) 염려되는 부작용이 있다면 관련 약제를 사용하지 않기, 2) 부작용과 관련된 약의 용량을 줄이기, 3) 부작용 완화에 도움이 되는 약을 보완하기 등이다. 1)은 예방적 방법이고, 2)는 부작용 발생 시 가장 기본적 방법이다. 3)은 부작용이 누적되거나 약물 간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겠다.
약은 적절하게 약답게 사용하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섬세하게 맞춤식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과 마음의 어려움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의사가 일방적으로 처방하기보다(가부장적 모델 혹은 온정주의 모델) 증상의 우선순위, 약의 우선순위를 의사와 환자, 가족, 돌봄제공자가 함께 살펴 최선의 치료를 선택해나가는 ‘함께하는의사결정 모델(shared decision model)’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일정 시간 이상 안정을 유지한다면 장기 사용 시에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에 서서히 점차적으로 줄여갈 수 있겠다. 비약물적 접근의 한계가 있을 경우 조심스럽고 섬세한 정신과 약물 치료를 신중하게 고려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장창현 정신과 의사
(느티나무의원 원장)
장창현 정신과 의사
(느티나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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