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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퀴즈 온 더 블럭!] 느티나무의료사협 사무국장,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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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38회 작성일 22-10-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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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가 컬러풀하게 공존하는 지역 공동체로 성장하길 바라는' - 김광일 사무국장


[2022.10.06]

김영준 / 느티나무의료사협 조합사업부 팀장




이번 주 가을비가 한차례 내린 뒤로 무척이나 쌀쌀해졌습니다. 지나가다 괜히 오뎅 국물 생각나는 계절이 돌아왔군요. 바깥 날씨는 쌀쌀하지만 여기 훈훈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느티나무의료사협의 김광일 사무국장님을 만나고 왔는데요. 그의 '20년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어땠는지 기대되지 않습니까?

갈 길이 멀어요~ 거두절미하고 지금 바로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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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파견 당시 난민가족의 가게에서


 

♥ 국장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다가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국장님 연애 경험이 궁금해지더군요^^ 어떠셨어요?


27살에 결혼했어요. 그때 당시에도 빠른 편이었죠. 친구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결혼했답니다.

군 제대하고 제가 다니는 교회에 왔더니 굉장히 조용하고 허리까지 긴 생머리를 한 처음 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연애는 한 2년 반 정도 했는데 한 번은 제가 모임 참여 때문에 약속 장소에 2시간가량 늦게 도착했어요.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고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난감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는데 그때까지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던 지금의 아내 모습을 봤어요. 이 사람을 내가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게 그때였죠.

당시 포항에서 근무하며 장거리 연애를 6달 정도 했는데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서 연애를 하니 직장 동료들도 월급 받아서 길에다 버린다고 그랬죠. 동료들이 서울에 금 싸놓은 게 있냐고 물어봤던 기억도 있네요. 그렇게 6달 동안 장거리 연애를 마치고 포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었죠.


♥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국장님 유년기가 궁금하네요^^


서울 이태원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늘 외국 사람과 마주치니 외국인에 대한 낯선 감정이 없어요. 그때 당시 참기름에 밥 비벼 먹는 것보다 버터에 밥 비벼 먹는 게 더 익숙했었죠.


♥ 서울 이태원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곳인데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그 당시 이태원은 그렇게 핫플레이스도 아니고 좋은 곳도 아니었어요. 제 기억 속에 이태원은 전쟁 경험을 안 한 저에게도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죠. 군용 차량이 많이 다녔어요. 미군 부대가 근처에 있어서 미군도 많이 봤었죠. 아버지가 미군 부대의 직원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미제를 많이 경험했어요.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자재라든지 원조 물품 같은 것들이 불법으로 많이 통용됐었죠. 그런 여러 자제들을 가지고 집들을 고치셔서 가족을 먹여 살린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제 기억으로는 이태원이 풍족한 지역도 아니었고 시장통 느낌이 있는 그런 지역이었어요.


♥ 아버님께 손재주를 물려 받으셨나 봐요? 전공도 전기공학을 전공하셨고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뛰어나가셔서 뚝딱 고치시고 오시잖아요^^


진짜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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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아이들과 평화교육






♥ 원래 전기공학을 전공하셨고 일반 기업을 다니시다가 비영리 단체로 옮기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사실 비영리로 터전을 옮긴다고 했을 때 제일 걸렸던 것들은 가족이죠. 우리 식구들이야 단출하고 아직 아이들도 어려서 아내만 동의하면 괜찮았지만 아내도 제가 활동하던 단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도 가는 길을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일 큰 부딪힘은 부모님이죠. 아버지는 2~3개월 눈도 안 마주치고 소통도 안 하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란 마음을 늘 가지고 계셨던 기억이 나요.


♥ 그럼 비영리 단체로 옮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셨나요?


저는 7이라는 숫자가 의미 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서 7년 동안 일했어요. 그 후 완전히 새로운 비영리 영역에서 국내 생활을 7년, 해외 현장 파견 생활을 7년, 다시 한국에 복귀하고 7년 정도를 한 비영리 단체에서 몸담았죠. 그러고 나서 지금의 느티나무까지 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7이라는 숫자가 저한테는 의미 있는 그런 숫자입니다.

저는 느티나무로 오기 전 평화 운동을 하는 단체 'The Frontiers', 우리나라 말로 '사단법인 개척자들'에서 20년 정도 일했는데 실무자로 일하기 전, 일반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활동가로 있었습니다.

당시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며 굉장히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겪었어요. 직장에서는 모든 기계가 자동화로 넘어가는 시기라 일도 많았었죠. 또한 2000년이 되는 순간 모든 장비가 폭발하거나 셧다운이 된다는 소문도 무성했어요. 이런 막연한 불안 심리 때문에 일도 많았고 지쳤었는데 해외 '동티모르'라는 인도네시아 27번째 주가 독립하는 이슈가 있었죠. 동티모르는 독립 투표 후 독립이 결정되었지만 독립을 반대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공수부대를 파견하고 동티모르의 친 인도네시아 파도 독립 무효를 외쳤습니다. 이런 독립 반대의 움직임으로 전쟁에 준하는 사태들이 일어났어요. 그로 인해 우리나라도 '상록수'라는 부대가 파견되기도 했고요. 이 시점이 제가 비영리에 오래 몸담게 된 계기가 됐었습니다.

동티모르의 평화를 위해 청년들이 참여하는 '평화 캠프'가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참가하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하지만 당시 31살 패기 왕성한 때라 직장 인사과에 찾아가면서까지 고집부려 한 달 휴가를 받고 동티모르로 떠나 평화 캠프에 참여하게 된 거죠. 이전에는 막연한 동경 혹은 지지하는 마음으로 활동했는데 이때를 시작으로 실제 행동으로 옮겼어요. 그 후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더 하고 퇴사한 뒤 '사단법인 개척자들'에 들어가게 됐어요.





♥ 비영리 단체에 일하면서 재밌었던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합니다.


당시 동티모르에서의 삶을 국내에서 많이 구현하려고 애썼어요. 현장에서 깨달았던 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자원이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리는 충분히 여유 있다는 것이었죠. 당시 몸담고 있던 단체 본부가 경기도 양평에 있었는데 동티모르의 화장실을 모티브로 '친환경 화장실'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예전 제주도 흑돼지 키우던 화장실의 방식과 비슷한데 볼일을 보고 그 위에 흙으로 덮는 식이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퇴비가 됩니다. 뒤처리도 화장지가 아니라 물로 닦아요. 그래서 오염은 줄이고 냄새도 없는 친환경 화장실이 되는 것이죠. 실제로 기존에 있던 화장실은 냄새나고 불결해서 저희 친환경 화장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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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체 쓰나미 피해 지역, 재건팀으로 현장 파견





♥ 동티모르 현장 경험처럼 다른 해외 경험도 많으실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을까요?


뉴욕 911사건 이후, 이라크 반전 운동으로 세계적인 인간 방패 팀을 만들어 전쟁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곳에 참여했어요. 이라크 바그다드의 '그린존'이라는 안전이 확보된 곳에 50일 정도 재건 및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갔었죠. 요르단에서 택시를 잡아 그린존으로 4시간 이동하고 목적지까지 30분가량 남은 지점에서 미군의 통제구역을 만났습니다. 고속도로 한 구간에 탱크 및 장갑차를 두고 경계 중인 미군을 보니까 여기가 전쟁터구나라는 실감이 나더라고요. 미군 수색 차가 와서 탑승자 전원을 수색한 뒤 아무 일 없이 통과할 수 있었어요.

목적지까지 20분가량 남았을까요? 갑자기 어떤 차가 우리 차 가까이 따라붙는 거에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하듯 달리다가 상대방 차가 우리 차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흰옷에 검은색 두건을 쓴 남성들이 내리면서 총을 거내 들었죠. 다행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는데 우리 물건들을 많이 뺏겼어요. 택시 운전기사도 이야기하더군요, "당신들은 운이 나빠서 이런 일을 당한 거다" 라고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선 '예상된 시나리오였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목적지에 잘 도착해서 파견 지역들도 좀 둘러본 후 어느 가정에 초대를 받고 휴식을 취하러 들어갔습니다. 그 지역은 다 흙으로 집을 지어서 굉장히 더워요. 낮에 열을 받은 집이 열을 머금고 있다가 밤에 발산하여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죠. 저희도 너무 더워서 입고 있던 활동 조끼와 짐들을 고스란히 집안에 놓고 땀을 식히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갔어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내려왔는데 조끼가 없어진 거에요. 조끼 안에 중요한 기록과 물건들이 있었는데 싹 없어진 것을 보고 아까 강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죠. 주민이 호의를 베풀면서 집 초대를 했는데 이런 식으로 물건을 훔쳐 간 것을 보고 너무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아주머니가 땀에 절어있던 조끼를 보고 물도 없는 지역 사막지대에서 그걸 빨아서 널어놓으신 거예요. 다른 짐들은 집 한쪽 그늘진 곳에 잘 모아뒀고요. 그 순간 너무 미안했어요. '나 스스로가 이 사람들을 보고 서운함을 느끼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할 만한 자격 있는 사람인가'라며 굉장히 뉘우쳤습니다. 여기 주민들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해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말이죠.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인간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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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캠프에서 마을 축제 준비 모습




♥ 비영리단체에 오랫동안 일하셨는데 느티나무의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이 단체가 어떤 단체이고 어떤 이념이나 정신을 갖고 있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느티나무의료사협 홈페이지를 보고 바로 그걸 알게 됐어요. 제한적인 내용이지만 하고자 하는 방향이나 취지에 충분히 공감했었어요.





♥ 느티나무 사무국장으로서 그리는 조직의 청사진을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해외현장에 있으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면서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가고 훼손된 관계가 있다면 회복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사실 제가 있던 단체는 재난 지역에 나가서 재건, 복구하며 집 짓는 그런 구호 단체가 아니었어요. 제가 일했던 곳은 평화 단체인데, 파괴되고 무너진 것을 회복하고 상식적으로 공평하고 공정하게 나눠질 때 평화가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죠.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해서 평화가 깨지고 갈등이 생기는 것인데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함께 뭔가를 하는 거예요. 그런 취지로 우리 느티나무가 좋은 관계를 이루고 그것을 통해 서로 협력하며 공동의 선을 만들어간다면 우리가 꿈꾸던 가치가 실현될 것이라 봅니다. 제가 지금까지 평화를 위해 일해온 것처럼 이 익숙한 일을 모두가 함께 한다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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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난민학교 교사 교육




♥ 느티나무에 바라는 점은요?


우리가 기본으로 느끼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 즉, 건강하고 예방하는 거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가지고 구성원들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다양성들이 우리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세대 차이, 각자의 이데올로기, 취미나 관심사가 달라도 그 다양성이 인정되면 굉장히 풍성한 조직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요즘 사회 분위기는 풍성함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단절하고 블록화 시켜 나눠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 다양성을 잘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굉장히 이질적이고 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모임이지만 각자의 역할들을 충실히 하여 컬러풀하게 공존하는 지역 공동체로 성장하면 어떨까" 라는 것이지요. '건강'이라는 한 부분만 고집하는 것 보다 지역별로 관심 있는 각각의 특성을 살리고 다른 지역과 연결돼 널리 영향을 끼치고 본보기가 되는 '사례'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컬러풀하고 풍성함을 가진 사회적협동조합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이런 잠재적인 힘이 느티나무에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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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사랑방에서 찰칵!

 




'김퀴즈 온 더 블럭'의 퀴즈를 맞추셔서 선물도 증정해 드렸습니다 ^^

다음 인터뷰도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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