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가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행사가 국회에서 성대하게 열리며 지역 기반의 협동조합 운동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협동과 연대를 통한 미래를 구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25일 국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행사에는 전국의 30개 의료협동조합 이사장들과 조합원들, 국회의원, 의료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하며 대강당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일부 참석자들은 간이 의자를 마련해 겨우 자리를 잡았고, 먼 거리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로 그 자리를 더욱 빛냈다.
또한 다카하시 준 일본의료복지생활협동조합연합회 회장과 프랑스 공제협회 야닉 루카스 부회장이 참석해 이번 행사의 의미를 국제적으로 확장시켰다.
◆ "불모지에서 피운 협동의 꽃...국회가 함께 돕겠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현장에 참석해 축사를 맡았다. 의원 시절 노원구가 선거구였던 그가 발언대에 나서자 노원구가 소재지인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노원의 자랑 우원식 의장님' 플랜카드를 흔들며 크게 호응했다.
그에 화답하듯 환한 미소로 축사를 시작한 우원식 의장은 "의료협동조합이 없었던 30년 전 우리는 공공성도, 의료제도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시작했다"며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씨를 뿌리고 키워낸 이 운동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고 의료사협이 30년간 걸어온 길의 의미를 "불모지에서 씨를 뿌려 꽃을 피운 여정"이라고 재조명했다.
우원식 의장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의료대란을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일갈을 날렸다. 우 의장은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국민들이 건강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냐"며 "정부는 더 유연하고, 더 열린 자세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지금 정부가 큰 책임을 지고 있다"고 꼬집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건강권을 보호하고, 의정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더 많은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들의 건강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임종한 의료사협 회장도 축사에 나섰다. 임종한 회장은 "여러 가지 어려움, 고통을 겪었지만 여러분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며 의료사협이 30년 동안 의료와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음을 강조했다.
임 회장은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돌봄, 장애인 지원, 방문의료와 방문간호를 시작한 것도 의료사협"이라며 "이제는 의료인과 시민 간의 협력 관계를 구축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한국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의료와 돌봄의 공공성 확대와 협동적 돌봄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지적했다. 임종한 회장은 "우리가 30년 전부터 예견한 고령화 문제와 돌봄 위기를 지금 우리는 겪고 있다"며 "이에 대비해 의료사협은 지역주민과 함께 대안을 찾고 길을 만들어왔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다짐했다.
의학자 출신인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습하기 전 지역사회에 대해 관심도 없고 환자의 삶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시험에 찌들던 학생들이 사협에 다녀오면 생각이 달려져서 온다"며 의과대학교 재학 시절을 회상했다. 김윤 의원은 "환자를 생각하고 지역사회가 왜 중요한지, 주치의가 왜 필요한지 등 환자의 삶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며 "이것이 의료사협이 보여주는 지역사회 역할이 의료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제는 국회가 의료사협이 보다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의료사협이 생기고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처음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 아이디어를 냈다'고 자랑할 정도로 성과를 거뒀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길이 남아 있다. 그 길을 함께 걸으며 돕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 의료사협, 30년의 성과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과제
축하행사가 끝나고 의료사협이 지난 30년간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임종한 회장은 '한국의료사협의 30년 성과와 한국사회에서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임 회장은 지난 30년간 의료사협이 이룬 성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공공성 강화와 협동 체계 구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임 회장은 "처음 의료사협이 시작될 때는 제도적 지원 없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률 95%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며 "30년 동안 겨우 30개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지만, 30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임 회장은 의료사협의 핵심 성과로 지역주민의 거버넌스 구축을 꼽았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협동 체계를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환자 중심의 의료 체계를 정착시키고,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임종한 회장은 또한 현재 의료사협이 6만5255명의 조합원, 640억 원의 매출, 195억 원의 출자금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경제 불황 속에서도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의료사협이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임 회장은 마지막으로 향후 30년을 대비해 "우리는 이제 통합돌봄법을 통해 더 큰 의료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통합돌봄법의 필요성을 짚은 뒤 "지역 기반의 환자 중심 의료 돌봄 체계를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라며 의료사협이 더욱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는 다카하시 준 회장이 나섰다. 그는 '초고령사회 일본의료협동조합의 역할과 비전'을 소개했다. 일본과 한국은 현재 급속히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다카하시 준 회장은 이에 "의료나 복지에 종사하는 우리의 역할이나 책임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카하시 준 회장은 "일본은 이미 이구 감소가 시작되고 있으며 약 40년 후인 2065년에는 인구의 약 40%가 고령자일 것이라는 이야기 나오고 있다"고 심각성을 알렸다.
또한 의료복지생협이 지향하는 두 가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건강수명을 늘려 평균수명과의 차이를 좁히는 것, 두 번째는 돌봄이 필요하게 돼도 인권이 지켜지고, 태어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이에 "우리 의료복지생협의 2030비전테마는 '누구나 건강하고 아늑하게 살 수 있는 마을 만들기 도전'이다"라고 밝혔다. 즉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 및 돌봄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카하시 회장은 또한 의료와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료복지생협은 공공성을 유지하며 시민들에게 접근 가능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사례들을 공유하며 한국의료사협과 일본의료생협 간의 협력이 고령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지역사회의 협동으로 이룬 의료사협 30년, 초고령사회 대비 과제
추혜인 은평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은 다학제 일차의료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일차의료가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이해하는 주치의의 역할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추혜인 원장은 "일차의료란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주치의와 환자 간의 장기적인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은평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사례를 통해 지역사회가 어떻게 함께 건강을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했는지 설명했다. 이들이 사례를 소개할 때마다 관중석에선 "대단하다", "멋있다"라는 반응이 나오며 박수가 터져나왔다.
19년차 조합원이자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일원인 이상월 조합원은 자신의 의료사협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의사가 근처에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료사협에 가입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료사협이 단순한 의료기관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고 말하며, 발언 도중 감정이 북받쳐 울먹이기도 했다.
이상월 조합원은 "의료사협은 제가 돈이 없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라며 "앞으로 의료사협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의료사협이 사회적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문 연구원은 의료사협이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가장 전형적인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의료사협이 사회적 경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을 어떻게 형성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이는 다른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
이어 의료사협이 주민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상호 건강 공동체를 만들어낸 점을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문 연구원은 앞으로의 과제로 통합돌봄 체계 구축을 제시하며, 의료사협이 그 중심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돌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의료와 요양, 돌봄이 통합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용자들에게는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지역사회에서는 큰 환경 변화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선 의료사협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보경 연구원은 "의료사협이 지역의 자원을 조사하고, 파트너와 후원 그룹을 발굴하며, 이를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회적 경제가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고, 지역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송직근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무이사는 의료사협의 지속 가능한 경영에 대해 발언하며 조합원 중심의 경영 철학과 지역사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립적 운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들레의료사협 22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사협이 수익을 지역사회에 재투자함으로써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합원 출자와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만 예방과 건강 증진 활동이 경영 수익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고 사회적 보상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 이사는 마지막으로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망을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기전 보건복지부 통합돌봄추진단 팀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통합돌봄 시범사업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최 팀장은 "살던 곳에서 편안하게 임종을 맞는 것이 이 사업의 진정한 취지"라고 밝히며 돌봄 서비스를 받은 환자들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한 보호자들의 감사와 만족 사례를 전했다.
최 팀장은 시범사업의 성공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향후 본격적인 사업 시행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산 지원과 재정적 한계를 지적하며 "지자체가 재정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거나 재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최 팀장은 통합돌봄 서비스의 연계와 관리 감독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정부의 예산 지원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 양성과 전달체계 효율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합돌봄 재원을 정부만이 책임질 수는 없으며, 지자체와의 협력과 자원 활용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최 팀장은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지역 구성원 간의 상호 돌봄을 촉진하고, 팀 기반 일차의료 서비스로 의료 전문가들이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한 아이를 기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노인을 돌보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하며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한국사협이 걸어온 30년의 역사는 지역사회의 협동과 연대가 만들어낸 소중한 성과다.
극한의 저출생 문제와 더불어 초고령사회 문제를 접하게 된 오늘 날 우리에겐 앞으로도 의료와 돌봄의 공공성 강화와 지역사회가 함께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는 단지 의료협동조합의 역할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와 돌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다.
협동과 상호 돌봄을 통해 누구나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여정에, 우리는 더 큰 책임감과 연대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