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띄우는 편지] 왕진,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의 고립을 찾아가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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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16 15:23본문
왕진,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의 고립을 찾아가는 발걸음
김종희 원장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느티나무의원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밝음의원
#원주투데이 "왕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
- 인간적인 돌봄과 존엄한 죽음은 모두의 '인생 과제'이다. 마을 돌봄은 왕진과 함께 재설계 되어야 한다.
2020년 2월 10일자 신문
“어머님이 대퇴골 수술 후 집에 누워만 지내면서 다리의 힘이 빠지고, 식사량이 줄었어요. 욕창도 걱정돼요. 가끔 허공을 향해 저기 저 사람이 누구냐고 소리 지를 땐 정말 불안해보여요. 한 달 전만 해도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셨는데,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왕진을 요청한 중년의 딸은 불안하다. 어머님이 거동이 불편해 제때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무력감을 느낀다. 병원에 모시고 가려면 응급차를 불러야 하고, 직장에 매번 휴가를 신청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약만 처방받아 오게 된다. 이러한 대면 진료의 공백이 장기화되면, 환자의 건강 관리는 부실해지고 의사의 처방도 안전하지 않다. 환자가 고령일수록 신체 상황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어서, 약만 타는 비대면 진료는 위험할 수 있다.
간호사와 함께 그 집에 왕진을 갔다. 어르신의 몸 상태를 살피고, 주요 증상과 병력을 문진했다. 약물 오남용이 있는지 모든 약통과 처방전을 정리하고, 혈액검사도 했다. 대퇴골 골절로 인한 와상 상태가 길어지면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해서도 대처 방안을 의논했다. 의원에 돌아와서 왕진 대면 진료와 검사 결과에 기초하여 적절한 처방을 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방문 간호를 통해 건강 상태를 살폈다. 어르신은 점점 식욕이 늘고, 신체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몇 개월이 지나 보호자로부터 어르신이 식사를 잘하고 목소리가 활기차며 생기 있는 웃음을 지을 때가 많아졌다고 전해 들었다. 걷기는 아직 불안하지만, 무릎으로 기어서 거실에 나와 햇볕을 쬐거나, 부축해 드리면 변기에 앉아 스스로 용변도 보실 수 있다고 했다. 보호자인 딸과 어르신의 건강 상태 변화에 대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인 왕진 주치의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왕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아내를 요양원에서 집으로 퇴원시키고 싶다’는 60대 남성의 상담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낙상으로 경추와 척추 수술을 받고, 집에서 지낼 여건이 안 되어서 요양원에서 지내왔는데, 최근 왕진 기사를 보고 살던 집에서 의사의 건강 관리를 받으며 일상생활을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퇴원 후에 적절한 돌봄을 받을 여건이 안되거나, 건강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요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왕진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자기 삶을 지속하게 하는 생활 속 건강 안전망의 필수 요소이다.
‘집에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해결해줄 방법이 없겠냐며 지인이 왕진 상담을 요청해왔다. 뇌경색으로 병원 치료를 받던 중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입원이 길어지고 있는데, 어머님이 정신이 들 때면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담당 의사로부터 이송 중 사망의 위험과 법적 책임 문제로 퇴원 불가 의견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집으로’라는 간절한 소원을 건넸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식이라며 자신을 원망했다. 다행히 호흡과 신체 징후가 안정화되면서, 산소 처방을 받고 가정 간호 서비스와 가까운 왕진 의료기관의 왕진 서비스를 통해 수액 처방을 받는 방법을 찾고, 집에서 맞이할 평온한 임종을 준비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일상을 자신이 살던 곳에서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지낼 수 있는 마을 돌봄, 커뮤니티 케어 활동은 왕진과 함께 재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 왕진은 모두가 고립되어가는 고령사회에서 아픈 자와 돌보는 자의 삶을 살피는 ‘또 하나의 진료’ 활동이다. 독거 사회의 고립이 깊어지지 않도록, 아픔의 인생과 돌봄의 인생은 서로 만나야 한다. ‘왕진 요청할 곳이 생겨 안심이 된다’며 아픈 가족을 곁에 두고 발을 동동거리던 수많은 돌보는 이들의 마음에 왕진 의사들의 발걸음을 보태어 본다. 인간적인 돌봄, 존엄한 죽음은 우리 모두의 ‘인생 과제’이다. 온전하게 존중받는 삶과 마지막 순간을 위해 돌봄과 왕진에 관한 상을 함께, 다시 그려야 할 때이다.
※ 느티나무의원도 2019년 12월 28일부터 시작된 "일차의료 왕진 수가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입니다. 매월 방문의료사업 TF회의를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어떻게 왕진 사업을 전개하며 홍보해야 할지 논의 중입니다. 왕진이 필요하신 분들은 저희 쪽으로 문의주시면 자세히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느티나무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031-555-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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