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나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의 마음 일기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홀로 힘겹게 버티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구는 그를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라고 부른다. 또 누구는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은 물론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눈에도 무모해 보이는 일에 덜컥 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던 정신과 전문의 임재영은, 2016년 초 병원을 그만두고 홀로 거리로 나선다. 자비로 구입한 중고 탑차를 몰고서.
그에게는 모험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병원 문턱을 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8개월. 이미 중증이 된 대다수 환자를 만나면서 그는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의사인 자신이 병원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신질환과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을 부수려면, 중증이 되기 전에 마음 아픈 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수 있으려면, 징검다리 역할을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그의 상담 트럭 가 탄생했다.
이 책은 저자가 를 만들고 운영하며 겪은 좌충우돌 사건들과, 이전에 병원을 찾지 못하고 홀로 힘겹게 버티다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온 더 로드 다이어리’다.
“지금 나는 정신과 의사지만,
한때는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였다.”
저자 임재영은 병원을 나와 거리로 나서면서 스스로 ‘행키’라는 별명을 지었다. ‘행복 키우미’의 준말이다. 이 행키를 알파벳으로 적으면 ‘hanky’인데, ‘손수건(handkerchief)’의 준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는 마음 아픈 사람들의 ‘행복을 키우는 사람’이자,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존재이고자 한다.
그는 판단하는 의사보다는 공감하는 의사이고 싶고, 같이 울며 상대방의 눈물을 닦아주는 의사이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역시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의대에 입학해서 전문의가 될 때까지 그는 우울증을 지독히 앓은 사람이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보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역지사지라는 말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고
모두가 같은 감정, 같은 판단에 이르지는 않는다.”(P.139~140)
임재영은 스스로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있다고 자각하기에, ‘역지사지’라는 명분으로 의사로서 자만하지 않을까 늘 경계하며 마음 아픈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 상담 사례가 등장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독박 육아’ 하는 어머니, 알코올중독에 빠진 대학생, 딸이 성폭행당한 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등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다. 저자는 그것이 어렵게 속 이야기를 꺼내준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는 마음 아픈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마음의 배터리 잔량이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을 위해,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 사람들을 위해
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누군가를 찾아 임재영은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들이 용기 내어 내민 손을 잡아주기 위해, 홀로 힘겹게 버티는 외로운 마음을 알아채기 위해, 또 그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들의 속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기 위해. 이것이 그의 사명이다.
그는 선행이 유행처럼 번지길 바란다. 그가 누군가의 선행을 보고 따라 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행키의 여정을 알게 된 누군가가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길 소망한다.